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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고백, 말없이 전해진 마음
늦여름 저녁, 해가 길어졌다 해도 마을엔 이른 어둠이 내려앉았다. 강희는 작은 손전등을 켜고 마을 뒤편 길을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다. 시골의 밤공기는 아직 덥지도 춥지도 않아, 혼자 생각을 정리하기엔 더없이 좋았다.
그날 음악회 이후로 여진을 향한 감정은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되었다. 어릴 때처럼 단순히 귀엽고 챙겨줘야 할 존재가 아니었다. 그녀는 강희의 하루를 기대하게 만들고,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다섯 살이라는 나이 차이, 자신보다 먼저 감정을 드러내는 여진의 순수함 앞에 강희는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여진은 그걸 모를 리 없었다. 그녀는 말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강희가 마음을 여는 순간까지, 한 발 물러서서 지켜보며.
“오빠, 나 별 보러 가고 싶어.”
며칠 전 여진이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요즘 별 잘 보여. 논두렁에 누워서 보자. 나중에 진짜 도시 가면, 이런 하늘 못 볼지도 몰라.”
강희는 그날,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오늘 밤, 여진은 그 자리에 있었다. 논두렁 한가운데 조심스레 돗자리를 펴고 누워 있는 그녀. 강희가 어둠 속에서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였다.
“진짜 왔네?”
여진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별 보러 온 거야?”
“응.”
강희는 그녀 옆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하늘엔 별이 쏟아질 듯 박혀 있었다. 도시 사람들은 보지 못할 투명한 밤. 귀뚜라미 소리와 논물 흐르는 소리, 가끔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마저 정겹게 느껴졌다. 두 사람은 말없이 누워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있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었다.
“나 어릴 땐...” 여진이 먼저 말을 꺼냈다. “오빠가 내 옆에 없으면 세상이 무너질 것 같았어.”
강희는 조용히 들으며 고개를 돌렸다. 여진의 눈은 별빛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오빠가 내 옆에 있으면, 세상이 다 가진 것 같아.”
강희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여진의 감정은 언제나 솔직했고 투명했다. 반면 자신은 늘 계산하고, 고민하고, 멈춰 서 있었다. 하지만 오늘 밤, 그는 결심했다. 더 이상 뒤로 물러서지 않기로.
“여진아.”
“응.”
“나, 너 좋아해.”
여진은 놀란 눈으로 강희를 바라봤다. 강희는 부끄럽게 웃으며 덧붙였다.
“오래전부터 그랬어. 너를 챙겨주던 게 습관인 줄 알았는데, 그게 마음이었더라.”
여진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강희의 손을 잡았다.
“나, 진짜 많이 좋아했어. 오빠는 몰랐겠지만.”
“알았어. 근데 일부러 모르는 척했어. 네가 다칠까 봐.”
그들은 별빛 아래에서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마음을 나눴다. 첫사랑은 고백의 순간이 아닌, 서로가 마음을 꺼내고 받아주는 그 온도로 완성된다는 걸, 그들은 알게 되었다.
이제 그들의 이야기는, 진짜 사랑의 첫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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