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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 소년 소녀의 첫사랑 이야기
    시골 소년 소녀의 첫사랑 이야기

    서로에게 자라나는 그 마음

     

    여름 장마가 끝나자, 마을은 다시 푸른 숨결로 가득 찼다. 들녘의 벼들이 바람에 일렁이고, 고추밭 사이로 비 온 뒤의 흙냄새가 퍼졌다. 여진은 비에 젖은 흙길을 조심조심 걸으며 강희가 기다릴 정자나무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날도 강희는 어김없이 자전거를 세워두고 정자 옆에 앉아 있었다. 교복 바지에 하얀 반팔 셔츠를 입고 팔을 접어 무릎 위에 얹고 있었는데, 마치 잡지 속에서 튀어나온 사람처럼 보였다. 여진은 순간, 자신의 셔츠에 묻은 흙을 허둥지둥 털어냈다.

     

    “왔어?” 강희가 먼저 말했다.

     

    “응... 비 맞은 땅이라 미끄러워서.” 여진은 헐떡이며 자리에 앉았다. “근데 오빠, 진짜 멋있어졌어.”

     

    강희는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갑자기 왜 그래.”

     

    “그냥. 요즘 오빠 보면... 가끔 가슴이 이상하게 쿵쾅거려.”

     

    강희는 아무 말 없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장난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의 옆에 앉은 여진은 더 이상 아이처럼만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가슴 아래 어렴풋이 자라나는 감정을 그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여진이 말을 이었다. “오빠 없으면, 되게 허전해. 하루에 한 번도 못 보면, 기운도 없고. 나만 그런가?”

     

    강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여진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쳤다. 그 짧은 순간, 세상은 조용해진 듯했다. 바람도 멈춘 것 같았고, 새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서로의 눈빛만이 가슴속을 흔들었다.

     

    “여진아.” 강희가 낮게 불렀다.

     

    “응?”

     

    “네가 자꾸... 어른 같아진다.”

     

    여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게... 싫어?”

     

    강희는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싫진 않은데, 걱정돼. 나이가 많으니까. 우리 둘 사이에 뭔가 생기면, 그게 너한테 짐이 될까 봐.”

     

    여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난 그런 거 안 무서워. 오빠랑 있으면... 그냥 좋아.”

     

    그날 이후, 두 사람은 자주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계절은 천천히 흐르고, 마음도 조용히 자라났다. 강희는 여진이 자라 가는 것을 바라보았고, 여진은 강희의 조심스러운 눈빛 속에서 사랑을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회관 앞에서 열린 작은 음악회에서 여진은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떨리는 손으로 기타를 잡고, 조용히 노래를 시작했다. 강희는 그 순간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이유로 만나 나와 사랑을 하고 / 어떤 이유로 내게 와 함께 있어준 당신 / 부디 행복한 날도 살다 지치는 날도 / 모두 그대의 곁에 내가 있어줄 수 있길...”

     

    강희는 무대 위에서 수줍게 웃으며 노래하는 여진을 보며 가슴이 저릿해졌다. 마을 사람들의 박수가 터졌고, 여진은 마지막까지 강희의 얼굴을 바라보며 노래를 마쳤다.

     

    그 밤, 별이 쏟아지는 하늘 아래. 여진은 말없이 강희의 옆에 섰다. 그리고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강희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그 손을 꼭 잡았다.

     

    그들의 첫사랑은 이제, 마음에서 손끝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

     

    시골 소년 소녀의 첫사랑 이야기 - 6화

    조용한 고백, 말없이 전해진 마음 늦여름 저녁, 해가 길어졌다 해도 마을엔 이른 어둠이 내려앉았다. 강희는 작은 손전등을 켜고 마을 뒤편 길을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다. 시골의 밤공기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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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 소년 소녀의 첫사랑 이야기 - 4화

    바람이 머무는 자리 장마가 오기 전, 마을은 잠시 더위를 식히는 듯한 바람으로 가득했다. 여진은 비가 오기 전 특유의 눅눅한 공기를 싫어했지만, 오늘은 괜히 그 바람이 반가웠다. 마을 뒷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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