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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 소년 소녀의 첫사랑 이야기
    시골 소년 소녀의 첫사랑 이야기

    조용한 여름날의 약속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기 전, 들녘은 연둣빛으로 가득 물들었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정자나무 아래에서 여진은 책을 펼쳐놓고 앉아 있었다. 바람이 잎을 흔들어 머리카락이 자꾸 눈앞을 가렸지만, 여진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의 눈길은 책 위에 머물러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시선은 마을 입구, 자전거를 타고 돌아올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왜 이렇게 늦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찰나, 저 멀리서 바퀴 소리가 들려왔다. 여진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곧 익숙한 실루엣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강희였다. 하얀 얼굴, 검은 머리, 긴 팔다리를 가진 청년. 멀리서 봐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오빠!”

     

    강희는 자전거를 멈추고 미소 지었다. 여진은 숨을 고르기도 전에 달려와 그의 옆에 섰다. 강희는 그녀의 머리 위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또 기다렸냐?”

     

    여진은 대답 대신 입을 삐죽 내밀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강희는 가방을 어깨에 걸치며 대답했다. “학교에서 보충수업이 있었어. 오늘 발표 수업이었거든.”

     

    “그래도 나 기다리는 거 알면서…”

     

    여진은 작은 소리로 말했지만, 강희는 다 들었다. 그는 대꾸하지 않고 정자나무 옆에 앉으며 말했다. “더운데 기다렸겠다. 이거나 마셔.”

     

    강희는 가방에서 꺼낸 캔 음료를 여진에게 건넸다. 아직 차가운 기운이 남아 있었다. 여진은 음료를 받아 들고 뚜껑을 딴 뒤, 조심스레 한 모금 마셨다.

     

    “… 고마워.”

     

    “별것도 아닌데 뭘.” 강희는 웃으며 말했다.

     

    여진은 조용히 그 옆에 앉았다. 초여름의 공기가 살짝 후덥지근했지만, 강희 옆에 있으면 불편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두 사람은 말없이 풍경을 바라보았다. 잠자리가 논 위를 날고, 멀리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여진이 입을 열었다. “오빠는… 서울 가고 싶어?”

     

    강희는 의외라는 듯 고개를 돌려 여진을 바라봤다. “왜 그런 걸 물어?”

     

    “그냥… 다들 그러잖아. 오빠는 머리도 좋고, 얼굴도 잘생기고… 서울 가면 멋진 사람 될 거라고.”

     

    강희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글쎄… 잘 모르겠어. 가야 할 수도 있고, 안 갈 수도 있고.”

     

    여진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나는?”

     

    “응?”

     

    “오빠가 서울 가면… 나도 데려가 줄 거야?”

     

    강희는 당황한 듯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곧 부드럽게 웃었다. “그럼. 데려가 줄게. 언제든.”

     

    여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말 없이, 하지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강희는 그런 여진을 한참 바라보다가 눈을 돌렸다. 햇살이 너무 밝아서였을까, 아니면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따뜻해져서였을까. 그의 가슴 한켠이 서서히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여진이 작게 속삭였다. “그 약속… 진짜지?”

     

    강희는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응. 진짜야.”

     

    두 사람 사이에 바람이 지나갔다. 산들산들, 약속처럼 가볍고 부드럽게. 그들의 여름은 그렇게, 또 다른 계절을 향해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

     

    시골 소년 소녀의 첫사랑 이야기 - 4화

    바람이 머무는 자리 장마가 오기 전, 마을은 잠시 더위를 식히는 듯한 바람으로 가득했다. 여진은 비가 오기 전 특유의 눅눅한 공기를 싫어했지만, 오늘은 괜히 그 바람이 반가웠다. 마을 뒷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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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 소년 소녀의 첫사랑 이야기 - 2화

    기다림으로 자라는 마음 초여름의 볕이 내려앉은 마을에는 연둣빛 논이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었다. 장독대 위로 햇살이 반사되며 번쩍였고, 마을 어귀 느티나무 아래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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