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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 소년 소녀의 첫사랑 이야기
    시골 소년 소녀의 첫사랑 이야기

    기다림으로 자라는 마음

     

    초여름의 볕이 내려앉은 마을에는 연둣빛 논이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었다. 장독대 위로 햇살이 반사되며 번쩍였고, 마을 어귀 느티나무 아래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그 풍경 속에서도 여진은 언제나처럼 강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중학생이 된 여진은 스스로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여전히 강희 오빠를 좋아했고, 그의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 설레곤 했다. 거울 앞에 서서 앞머리를 넘겨보기도 하고, 엄마 화장품을 몰래 바르기도 하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러면… 오빠 눈에 조금은 예뻐 보일까?’

     

    하지만 강희는 여전히 차분했다. 늘 그랬듯 말수가 적었고, 여진의 투정에도 쉽게 감정의 파동을 보이지 않았다. 시내 고등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점점 더 어른스러워졌고, 여진에게는 그 모습조차 멀게만 느껴졌다.

     

    주말이 되면 강희는 마을로 돌아왔다. 여진은 그런 주말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그날도, 언덕 아래에서 자전거를 끌고 내려오는 강희를 발견한 순간 여진의 눈이 반짝 빛났다.

     

    “오빠! 여기야!”

     

    강희는 그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익숙한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멈췄다.

     

    “또 기다렸냐?”

     

    “아니거든. 마침 여기 지나가던 참이었거든.”

     

    여진은 뺨이 붉어지면서도 당당한 척 말했다. 강희는 그런 여진이 귀여워 웃음을 참으며 자전거에서 물병을 꺼냈다.

     

    “덥지? 이거나 마셔.”

     

    여진은 아무 말 없이 물병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물을 마시며 그가 보는지도 모른 채 그의 손을 훔쳐봤다. 언제나 말랐지만 단단한 손. 운동을 해서 그런지 손등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여진은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오빠는… 나 언제까지 애로 볼 거야?”

     

    강희는 물병을 닫던 손을 멈췄다. 그리고는 천천히 여진을 바라봤다. 맑고 진지한 눈동자. 순간 여진은 숨이 막힐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 아직도 많이 울잖아.”

     

    그 말에 여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창피하고 억울해서, 아니면 정말로 울고 싶어서였다. 강희는 당황한 듯 물러서려다 결국 여진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울지 마. 너 우는 거 싫어.”

     

    그 말은 여진의 마음에 무언가를 남겼다. 단순한 위로 이상의 감정, 아주 오래된 마음의 작은 문이 열리는 소리처럼. 여진은 울음을 참으며 웃었다.

     

    “그럼 오빠는 내가 안 울면… 어른으로 봐줄 거야?”

     

    강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가만히 여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말보단 행동이 먼저였던 그는, 그 조용한 손길로 여진에게 많은 걸 전하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흘렀던 그 짧은 침묵은, 어쩌면 서로의 마음이 조용히 닿은 순간이었을지도 몰랐다.

     

     

    (다음 화에 계속)

     

    시골 소년 소녀의 첫사랑 이야기 - 3화

    조용한 여름날의 약속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기 전, 들녘은 연둣빛으로 가득 물들었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정자나무 아래에서 여진은 책을 펼쳐놓고 앉아 있었다. 바람이 잎을 흔들어 머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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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 소년 소녀의 첫사랑 이야기 - 1화

    노란 꽃잎이 흩날리던 봄날 해가 길어지기 시작한 초봄의 오후, 마을 뒤편 언덕길에는 노란 산수유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바람이 살짝 스칠 때마다 꽃잎 몇 장이 날려 흙길 위에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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