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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꽃잎이 흩날리던 봄날
해가 길어지기 시작한 초봄의 오후, 마을 뒤편 언덕길에는 노란 산수유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바람이 살짝 스칠 때마다 꽃잎 몇 장이 날려 흙길 위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 길 한가운데, 검은 교복 바지를 단정하게 입은 소년이 느릿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이강희, 열여덟의 봄이었다.
강희는 마을에서 공부 잘하고 잘생기기로 유명했다. 하얀 피부에 조용한 말투, 혼자 있는 걸 좋아했지만 운동도 잘해서 동네 어르신들은 “저 총각, 서울 가면 배우 되겠어” 하며 입을 모았다. 그런 그에게 어린 시절부터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아이가 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늘 뒤를 졸졸 따르던 여자아이. 다섯 살 어린 최여진이었다.
여진은 구릿빛 피부에 까만 눈동자가 또렷한 아이였다. 뭐든 호기심이 많고 잘 웃고, 또 잘 울었다. 강희가 자전거를 타고 가면 뒤에서 숨차게 따라오고, 개울가에서 물수제비를 뜨면 자기 손에 돌멩이를 쥐고 따라 하던 아이. 여진은 늘 강희를 오빠라고 불렀고, 강희는 그런 여진을 귀찮아하면서도 늘 챙겨주곤 했다.
“또 넘어졌냐?”
“응… 돌멩이에 걸렸어. 무릎 까졌어…”
강희는 한숨을 쉬며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여진의 무릎에 대줬다. 언제나 그랬다. 여진은 강희 앞에서 울다가도, 그 손길에 금세 울음을 멈추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여진의 마음은 변해갔다. 중학생이 되던 해였다. 강희는 이미 고등학생이 되어 마을보다 먼 시내 학교로 다녔고, 여진은 여전히 마을에서 다니는 중학교에 남아 있었다. 예전처럼 매일 보진 못했지만, 여진은 여전히 강희의 발걸음을 기다렸다. 주말마다 돌아오는 강희의 자전거 소리, 언덕을 내려오는 길에서 마주치는 순간을 위해 머리를 묶고 옷을 고쳐 입었다.
“오빠!”
강희는 조용히 웃었다. 예전처럼 여진의 이마를 툭 치며 말했다.
“중학생이 다 됐네.”
그날부터였다. 여진의 가슴이 이상하게 두근거리기 시작한 건. 단순히 오빠가 아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처음 느낀 순간이었다. 어릴 적 강희의 등에 업혀 잠들던 기억은 이제, 강희의 눈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여진은 여전히 투정을 부렸다. 잘 삐지고, 울고, 강희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심술도 부렸다. 강희는 그런 여진을 귀찮아하면서도 매번 받아줬다. 어릴 적부터 그래왔듯이.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도 작은 변화가 자라기 시작했다. 여진의 눈물에 마음이 쓰이고, 여진의 웃음에 기분이 좋아졌다. 단지 동네 꼬마로만 보았던 여진이, 더 이상 꼬마처럼 보이지 않았다.
언제부터였을까. 강희도 여진이 기다려지는 사람이 되었고, 자신이 마음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조용히 그 감정을 눌렀다. 다섯 살이라는 나이 차이, 시골의 시선, 그리고 여전히 아이 같은 여진. 그 모든 것이 감정 앞에 벽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날, 여진이 말했다.
“오빠. 나… 나중에 커서, 오빠랑 결혼할 거야.”
강희는 놀라지 않았다. 웃으며 대꾸했을 뿐이다.
“그래. 그럼, 얼른 커라.”
하지만 그날 밤, 강희는 잠들지 못했다. 여진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들의 첫사랑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
시골 소년 소녀의 첫사랑 이야기 - 2화
기다림으로 자라는 마음 초여름의 볕이 내려앉은 마을에는 연둣빛 논이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었다. 장독대 위로 햇살이 반사되며 번쩍였고, 마을 어귀 느티나무 아래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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