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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까
강희 오빠는 요즘도 예전처럼 내 옆에 있다.
밥 먹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 아무 말 없이 같이 걷고 웃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자꾸만 멀어지고 있는 기분이다.
나는 분명히 마음을 고백했다. 편지로, 그 애의 책가방 사이에 조용히 끼워 넣었던 내 진심.
그 편지를 읽었다는 것도 안다. 며칠 뒤, 오빠가 내게 조금 더 다정하게 웃어주었으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할까.
“오빠, 오늘은 뭐 해?”
“독서실 좀 갔다 올게.”
짧은 대화 속에도 낯선 거리감이 배어 있었다. 나는 눈치를 보며 애써 웃었지만, 오빠는 이미 고3이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달랬다.
책상에 앉아 영어 단어를 외우다가도, 자꾸만 다른 생각이 난다.
강희 오빠는 곧 수능을 보고, 그다음엔 서울로 갈지도 모른다. 그럼 나는?
나는 그대로 여기 남아, 그 애의 빈자리를 하루하루 헤아리게 될까.
나는 아직 오빠처럼 크지 못했다.
오빠가 나보다 더 현실적인 것도, 더 단단한 사람이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만 기대고 싶어진다.
그날 저녁, 오빠가 우리 집 앞에 나타났다. 손에는 작은 음료수 두 병이 들려 있었고, 말없이 내게 하나를 건넸다.
“이거, 네가 좋아하는 거 맞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음료를 받아들었다. 따뜻한 손이 내 손끝을 스쳐갔다. 잠깐의 스침인데,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오빠는 여전히 조용했다. 아무 말 없이 내 옆에 앉아 마을 뒤편 논두렁을 바라보았다.
“오빠.”
“응?”
“그냥… 나 너무 행복한데, 가끔은 무서워.”
강희 오빠는 나를 보지 않았다. 하지만 내 말의 의미를 이해한 듯, 조용히 입을 열었다.
“무서워도, 지금은 행복한 거면… 그거면 된 거 아니야?”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틀린 지도 모르겠어서.
밤이 되자, 방 안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커튼이 흔들렸고, 나는 문득 오빠의 웃는 얼굴을 떠올렸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까…”
혼잣말이 새어나왔다. 아무리 마음이 닿아도, 그 사람의 마음이 나와 같은 방향으로 향해 있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 이 시간이 좋다.
같이 걸었던 길, 함께 마셨던 음료수, 나를 조용히 바라보던 그 눈빛.
그 기억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언젠가 멀어질지도 몰라서 더 붙잡고 싶은 이 마음. 나는 오늘도 오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다짐한다.
“나는, 포기하지 않을 거야.”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