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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에서 보낸 겨울
기차역으로 가는 길, 여진의 손끝이 시렸다.
첫눈이 내리기 직전의 공기는 마치 무언가를 예고하듯 차분하고 서늘했다.
강희 오빠는 오늘 서울로 간다.
정확히는 ‘떠난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몇 번이고 연습했지만, 여진은 이 작별 인사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역 대합실 안, 강희는 여전히 조용한 얼굴로 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표를 쥔 그의 손, 내려앉은 머리카락, 그리고 익숙한 단정한 옷차림.
그 모습이 이상하리만큼 낯설게 느껴졌다.
“춥지?”
오빠가 물었다.
여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괜찮아.”
둘 사이엔 한참 말이 없었다.
멀리서 기차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아직 몇 분 남았는데도, 마음은 이미 뭔가를 놓아버린 것처럼 허전했다.
“가서… 연락할게.”
“응. 기다릴게.”
짧은 대화, 그 속에 담긴 수많은 감정.
여진은 울고 싶지 않았다. 울어버리면 정말 작별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
“여진아.”
강희가 불렀다.
“응?”
“너 덕분에, 진짜 많이 웃었어.”
여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신 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그 눈빛이 너무 따뜻해서 더 아팠다.
기차가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리고 또 탔다.
강희는 가방을 메고 여진 앞에 섰다.
“잘 다녀와.”
“응.”
“그리고… 네 하루를 잘 살아.”
그건 이별의 인사 같았다.
강희는 마지막으로 여진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말없이 미소 지은 채, 기차 안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갔다.
기차 문이 닫히고,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여진은 그제야 두 손을 꼭 움켜쥐었다.
울고 싶었지만 울지 않았다.
울음보다 더 뜨겁게 마음속에 남는 게 있었으니까.
‘오빠. 나 이제부터 혼자 걷는 연습할 거야. 그렇지만 가끔은, 너랑 걷던 길을 돌아볼 거야.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조용한 기다림이니까.’
첫눈은, 그날 밤 늦게서야 내렸다.
여진은 창밖을 보며 조용히 웃었다.
그 눈이, 강희 오빠가 무사히 도착했다는 작은 신호처럼 느껴졌다.
(다음 화에 계속)